제2부 복음의 마지막 결론을 아십니까?-강병국
1) 마지막 세대의 필요성
우리들의 눈에도 이렇듯 답답하고 슬픈데 하나님께서 보실 때에는 오죽이나 답답하시고 가슴 에이는 고통을 느끼시겠는가? 결국은 모든 인류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닌가? 사랑 그 자체이신 분께서 이렇게 고통스러우심을 참으시면서 기다리시는 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우리는 하나님의 구속의 계획을 좀더 자세하게 이해할 필요가 있다. 하나님께서 무엇을, 왜 기다리고 계신지를 이해하게 되면, 우리를 이 마지막 시대에 그리스도인으로 세우신 그 목적을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
"이 사람들이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증거를 받았으나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더 좋은 것을 예비하셨은즉 우리가 아니면 저희로 온전함을 이루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히브리서 11:39,40).
위의 성경 절은 마지막 세대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바울은 로마서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피조물들의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의 나타나는 것이니 피조물들이 허무한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 오직 굴복케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라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노릇한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로마서 8:19~21).
하나님께서는 마지막 세대인 14만 4천, 참 영적 이스라엘인 참 교회가 준비되지 않으면 이 세상 역사를 끝마치실 수가 없다. 그렇지 않다면 무엇 때문에 이렇게 오래 기다리실 필요가 있겠는가? 하나님께서는 이제 곧 출현할 참 하나님의 교회의 현시를 간절하게 기다리시고 계신다. 구속의 경륜에는 사람을 구원하는 일보다 더 넓고 깊은 목적이 있다.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은 단순한 사람의 구원이나, 이 작은 세계의 거민들에게 하나님의 율법의 불변성을 이해하도록 하시는 것뿐만이 아니라, 온 우주 앞에 하나님의 성품을 옹호하려고 오셨다. 사람의 구원을 위해 돌아가신 그리스도의 생애는 사람들을 하늘에 접근하게 할 뿐만 아니라, 온 우주 앞에 사단의 반역을 처리함에 있어서 하나님과 그분의 아들 예수님이 정당하다고 변호하며, 하나님의 계명의 불변성을 확립하고, 죄의 성질과 그 결과들을 나타내셨다. 선과 악의 대쟁투는 최초부터 하나님의 계명에 관한 것이었다.
구속의 경륜에는 사람을 구원하는 일보다 더 넓고 깊은 목적이 있다.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은 단순한 사람의 구원이나, 이 작은 세계의 거민들에게 하나님의 율법의 불변성을 이해하도록 하시는 것뿐만이 아니라, 온 우주 앞에 하나님의 성품을 옹호하려고 오셨다. 사람의 구원을 위해 돌아가신 그리스도의 생애는 사람들을 하늘에 접근하게 할 뿐만 아니라, 온 우주 앞에 사단의 반역을 처리함에 있어서 하나님과 그분의 아들 예수님이 정당하다고 변호하며, 하나님의 계명의 불변성을 확립하고, 죄의 성질과 그 결과들을 나타내셨다. 선과 악의 대쟁투는 최초부터 하나님의 계명에 관한 것이었다.
2) 선과 악의 투쟁
사단은 하나님이 불공평 하시며, 그분의 율법에 결함이 있고, 우주의 행복을 위해서는 이것을 변경해야 한다고 증명하려고 노력 하였다. 사단이 되기 전 루시퍼는 우주에서 피조물 중에 가장 아름답고 영리한 존재였다. 그는 항상 하나님의 보좌 주위에서 옹위하는 그룹 천사였고 하늘 천사들의 찬양을 지휘하고 그들의 임무를 지도하는 천사장이었다. 그가 지녔던 지혜와 아름다움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선물이었다. 그러므로 그는 그 선물들을 가지고 하나님께 영광과 찬송을 돌리는 것이 그가 할 일이었으나 루시퍼는 그 영광을 자기에게 돌리고 높아져서 교만해졌다. "너는 기름 부음을 받은 덮는 그룹임이여 내가 너를 세우매 네가 하나님의 성산에 있어서 화광석 사이에 왕래하였었도다 네가 지음을 받던 날부터 네 모든 길에 완전하더니 마침내 불의가 드러났도다"(에스겔 28:14,15).
그는 하나님 곧 전능자들의 집회에 자기도 일원이 되어 포함되기를 바랄 정도까지 스스로 교만해졌다. 그는 마침내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시기하는 데까지 이르게 되었고 마침내 우주의 엄청난 반역과 죄악의 소용돌이를 일으키게 되었다. "너 아침의 아들 계명성이여 어찌 그리 하늘에서 떨어졌으며 너 열국을 엎은 자여 어찌 그리 땅에 찍혔는고 네가 네 마음에 이르기를 내가 하늘에 올라 묻 별 위에 나의 보좌를 높이리라 내가 북극 집회의 산 위에 좌정하리라 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 지극히 높은 자와 비기리라 하도다"(이사야 14:12~14).
그러나 문제는 루시퍼 자신이 아무리 높아졌다고 하더라도 자기 자신을 경배해 줄 대상들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자기가 스스로 경배할 대상들을 창조할 수 없었기 때문에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님께로부터 경배자들을 빼앗아 오는 것이었다. 예배자들을 훔쳐오려면 자기 자신이 세울 정부가 하나님의 정부보다 훨씬 더 좋다는 사실을 그들에게 알려야 했다. 그래서 루시퍼는 자기의 정부를 높이기 위해서 하나님의 정부를 끌어내리는 일을 하기에 이르렀고 하나님의 정부를 끌어내리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법을 공격하여야 하기 때문에 루시퍼는 하나님의 정부의 기초인 율법을 비난함으로 그의 반역의 운동을 시작하게 된 것이었다.
그의 악랄한 수법은 많은 천사들의 마음을 동요시키기에 충분하였다. 그의 하나님을 향한 고소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었다.
첫째로, 천사들은 완전한 존재로 지음을 받았기 때문에 어떠한 법 조항으로 지배를 받거나 묶일 필요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이렇게 법으로 구속을 받고 사는 것은 하나님께서 자기들을 노예로 얽어매려고 하는 속셈이라는 비난이었다.
둘째로, 하나님 자신은 법을 지키지 않으면서 우리에게만 강요하는 것은 그가 이기적인 하나님이라는 것을 나타낸다는 고소였다.
세째로, 피조물 가운데서 아무도 하나님의 법을 완전하게 지킬 수 있는 자가 없다는 것이었는데, 피조물 중에서 제일 으뜸인 자기 자신이 지킬 수 없는데 누가 과연 그 법을 완전하게 지킬 수가 있겠느냐고 반문한 것이었다.
위의 세 가지 고소는 하나님께 치명적인 것이 아닐 수 없었다. 이 교만하여진 그룹 천사는 하늘을 다니면서 천사들의 마음속에 의심들을 넣으며 그들의 사랑과 충성을 흔들어 놓기 시작하였다.
하나님께서 천사들에게 호소하신 후에도 여전히 그들의 삼분지 일은 루시퍼의 편에 가담하였다. 그 많은 천사가 속임 당하여 흔들려 나가서 사단의 편에 가담한 것을 보았을 때 하나님 아버지의 심정이 어떠하였겠는가!
루시퍼는 천사들 사이를 왕래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을 것이다. "너희는 잘 모를 거야. 하나님이 정말 어떠한 존재인지를. 나는 항상 그분 곁에 있거든. 너희가 볼 수 없는 면들을 나는 항상 보고 있으니까 말이야. 그런데 하나님은 너희가 생각하는 그러한 존재가 아니야. 우리에게는 큰 개혁이 필요하단 말이야." 넌지시 던지는 그러한 의심의 말들은 어떤 천사들의 충성심을 흔들어 놓는데 충분하였다. 이렇게 하여 하나님의 성품과 율법을 대항하는 반역 운동이 하늘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여기에서 우리는 한 가지 중요한 질문을 던져야 한다. 그것은, 왜 하나님께서 사단을 처음부터 죽여 버리시고 다른 존재를 창조하셔서 미리부터 사전에 반역을 막지 않으셨는가 하는 질문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즉시로 사단을 죽이셨더라면, 오히려 천사들과 우주 거민들 마음 가운데 다음과 같은 커다란 해결되지 않은 의문이 남게 될 것이었다. "왜 하나님께서 루시퍼를 그렇게 빨리 없애 버리셨지? 하나님께서 뭐, 두려운 것이 있으신 것이 아닐까? 아직 우리가 루시퍼에게서 크게 나쁜 것을 본 것이 없지 않은가?"
그러한 마음에서 그들은 하나님을 섬기기는 해도 무서워하는 두려움으로 섬길 가능성이 있었기에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하실 수가 없었다. 하나님께서는 피조물들에게 자유 의지와 선택권을 주셨다. 이것이 하나님과 피조물 사이에 사랑의 유대를 굳게 맺어 주는 중요한 기반이 되고 있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우주에 의심과 죄의 세력이 영원히 존재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이 반역 운동의 결과를 스스로 우주 앞에 폭로하여 보일 때까지 존재하도록 허용하실 수밖에 없게 되신 것이다.
3) 지구의 타락과 예수님의 구속
바로 이 시점에서 이 지구는 온 우주의 관심을 끄는 시험대가 된 것이다. 하늘 모든 거민들을 위한 교과서가 되는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그런데 아담과 하와가 사단의 유혹에 너무 쉽게 넘어가 버리고 말았다. 하와가 했어야 했던 일은 뱀에게 "아니요!"라는 한마디의 말이었다. 뱀과 대화를 나누었더라도 남편에게 달려와 물어보았으면 될 것이었다. 뱀이 따 준 선악과를 손에 받아 들고 있었다 할지라도 그것을 가지고 하나님께 가서 다시 물었으면 될 일이었다. 다시 말해서 아담과 하와의 시험은 쉬운 일이었다. 그러나 둘째 아담 예수님께서 당하신 시험은 커다란 고통을 수반하는 시험이었다. 마지막 세대가 보여야 할 시험도 커다란 고통을 수반하는 시련일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 감사하자. 주님께서 승리하신 것처럼 그들도 승리할 것이다.
아담과 하와가 범죄했을 때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용서해 주시고 마치 없었던 일처럼 취급하고 그냥 넘어가실 수가 없었단 말인가? 그러나 그렇게 하실 수가 없으셨다. 그 이유는, 무조건의 용서가 우주 거민들에게 하나님의 법을 지키는 것이 그렇게 중요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게 할 것이었기 때문이다. 죄는 아주 무서운 것이라는 사실로 받아들여져야만 한다. 죄는 그 결과를 반드시 거두어야 한다. 죄는 우주를 파괴하는 힘이다.
또 다른 한 가지 질문이 대두하는데, 그것은 천사는 구세주가 될 수가 없는가 하는 것이다. 죄 없는 존재가 대신 죽어 주면 되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율법을 범한 자를 위해 대신 죗값을 치르기 위해서는 율법을 제정하신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이다.
만일 천사가 죄인을 위해 대신 죗값을 치러 준다면 그 율법의 요구가 천사의 수준까지만 중요한 것으로 인정될 수 있다. 하나님의 율법은 하나님 자신까지도 묶는 법이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에 대한 당신의 사랑의 크기를 나타내시고 아울러 죄의 흉악성을 직접 보이시기 위해 이 세상에 임하셨다. 또한, 어떠한 환경에서일지라도 죄는 승리하고 극복될 수 있다는 모본을 남기시기 위해 예수님께서 이 땅에 임하셨다. 예수님보다 더 인간을 사랑하는 천사가 과연 있겠는가?
4) 필요한 하나님의 증인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사단과의 이 선악간의 대쟁투에서 두 가지가 꼭 필요해지셨는데, 그것은 사단의 기만을 폭로하기 위한 시간과, 또한 율법을 누구나 다 지킬 수가 있다고 옹호하며 증명하여 줄 증인들이 필요해지신 것이다. 바로 이 두 가지가 하나님께서 이렇게 오래도록 참으시면서 이 지구의 역사를 연장하시는 이유이다.
여기에서 또 한 가지 묻고 지나가야 할 것이 있는데, 그것은 왜 예수님께서 인간이 범죄한 후에 4,000년이나 지나서 지구에 오셨는가 하는 것이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인간을 구원하는 일은 용서 이상의 일이 요구된다. 그것은 용서받은 인간이 다시 거룩한 생애를 살 수 있다는 사실과 어떻게 그러한 생애를 살기 위한 능력을 받을 수 있는지를 사람들이 이해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었다. 그렇지 않다면 애초부터 하나님께서 그냥 용서해 주시고 말았을 것이지 무엇 때문에 이러한 대쟁투의 역사를 전개하셨겠는가?
하나님께서는 죄를 이길 힘을 공급하실 수가 있으시다. 그러나 인간들이 그것을 어떻게 받을 수 있는가? 인간이 모든 죄와 유혹들을 이기고 거룩한 생애를 살 수 있다는 사실을 확신시키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무엇을 하셔야만 하였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인간이 받는 모든 유전 법칙을 통한 연약성과 육체의 본성을 가지고 이 땅에 임하실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그것도 인간 역사 중에 가장 어두웠던 장면인 로마의 시대, 곧 사람들이 서로 죽이는 일을 바라보며 즐거워할 정도로 타락했으며, 사람들을 야수와 싸워서 죽게 만드는 일들을 오락 삼아 바라볼 정도로 악해졌던 시대까지 기다리셨다가, 바로 그러한 정도까지 타락한 인간성을 유전으로 다 받아쓰시고 이 땅에 임하시어, 그러한 연약한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성령의 충만한 생애를 사심으로, 단 한 번도 마귀에게 져서 죄를 범하지 않으신 생애를 보여 주심으로, 아무도 핑계할 여지가 없도록 우리에게 그 가능성을 설득시키신 것이었다.
그렇다면 주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완전한 승리의 생애를 사심으로 사단과 우주를 향한 하나님의 목적을 달성하시고 의문들을 다 풀어주셨음에도 왜 또다시 2,000년이란 세월을 이렇게 기다리셔야만 하셨는가?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만일 하나님께서 그때에 사단을 죽이셨다면 우주의 존재들이, "자, 그것 봐! 하나님께서는 사단이 존재하는 한 인간들이 승리할 수가 없기 때문에 그를 없애버리신 것이야."라고 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또 한 가지 더 중요한 이유는, 사단이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 십자가로 승리하시자, 예수님의 승리의 생애는 법정 싸움에서 실격이라고 주장한 것이었다. 예수께서 신성을 사용하여 이기셨는지 누가 아느냐는 비난이었다. 인간의 몸을 가지고 오셨지만 어쨌든 당신은 하나님이기 때문에 실격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에녹, 엘리야, 요셉 같은 완전히 승리한 생애를 살므로 증명한 자들이 있었지 않느냐는 하나님의 반문에, 사단은 다시 이렇게 고소하고 나서는 것이다. "하나님, 당신이 그들을 너무 지나치게 보호하고 있었기 때문에 내가 마음 놓고 그들에게 접근하여 일할 수가 없었지 않습니까? 내가 그들에게 내 할 일을 다 할 수 있게 해 주었더라면 그들은 분명히 내 밥이 되었을 것이오! 당신은 그들을 너무 지나치게 막아주고 있었단 말이오. 불공평합니다." 그것이 욥기 1, 2장에서 발견하는 사단의 고소가 아닌가? 추호도 의심을 남기지 않으시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사단의 이 고소를 향한 마지막 한 가지 최후의 전시를 준비하셨다. 그것이 바로 마지막 세대의 현시이다.
5) 하나님의 마지막 세대
하나님께서 이번에는 한 교회를 준비하시고 계신다. 이 교회야말로 참 영적 이스라엘이 될 것이다. 이 14만 4천은 사단의 비난을 완전히 그리고 영원히 침묵시킬 것이다. 12×12=144이다. 1,000이란 숫자는 항상 "많다"는 뜻을 나타내는 숫자이다. 그들은 12사도들의 가르침을 기초로 하여 생긴 참된 영적인 12지파, 곧 영적 이스라엘이라는 뜻이다. 그러한 사람들이 많을 것이라는 뜻이 14만 4천이다. 만일 열 아들을 가진 아버지가 있는데, 그 아들들에게 어떠한 일을 시키려고 하고 있다고 가정해 보자. 그때 그 아들들이 다 그 일은 너무 힘들어서 우리 중에 아무도 그 일을 할 수가 없다고 말한다 생각해 보자. 그때 어떻게 하면 이 아버지가 모든 아들에게 누구나 다 그 일을 할 수가 있다는 사실을 증명해 보여 줄 수가 있겠는가? 그 일은 다음과 같이 이해할 수가 있다. 만일 그 아버지가 열 아들 중에 가장 약한 막내둥이 아들을 데리고 가서 그 일을 할 수 있도록 훈련한 다음에 다른 모든 아들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막내가 그 일을 해 내는 모습을 보여 준다면 다른 나머지 아들들이 어떻게 생각하겠는가? 과연 그래도 그들이 그 일을 하기에 불가능하다고 우길 수가 있겠는가?
마찬가지이다. 하나님께서는 이 지구, 아니 이 우주에서 막둥이로 태어난 우리들, 곧 유전 법칙에 의하여 가장 연약한 몸과 마음을 타고 태어난 마지막 세대를 훈련하시어, 성령님께 온전히 굴복하여 지배를 받는 인간은 누구나 모든 죄를 승리하는 생애를 살 수 있다는 사실을 그들의 생애의 전시를 통해 우주 앞에 증명해 보이려고 하시는 것이다. 그때 그들 앞에서 누가 과연, 하나님의 계명을 온전히 순종하는 것이 불가능한 일이라고 주장하며 나설 수가 있겠는가? 드디어 하나님께서는 14만 4천을 통해서 사단의 모든 비난과 거짓 주장들을 침묵시키고 하나님의 율법과 당신의 성품을 온 세상 앞에 변호하시게 되는 것이다. 얼마나 감격스러운 일인가! 또한, 우리는 얼마나 큰 특권인가! 그러므로 짐승의 표에 대하여 경고하는 천사는 이렇게 말씀하고 있다.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저희는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요한계시록 14:12).
사단은 "욥이 어찌 까닭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리이까 주께서 그와 그 집과 그 모든 소유물을 산울로 두르심이 아니니이까"(욥기 1:9,10)라고 고소하였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너무 지나치시게 보호함으로 그들에게 사단이 마음대로 공격하여 이길 수가 없었다는 비난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사단을 영원히 잠잠케 하시기 위해 14만 4천들을 훈련하시고 다시는 죄와 유혹에 넘어지지 않을 성품을 준비시키신 후에 이 세상에 은혜의 문을 닫으시는 것이다. 그 후에는 더는 중보의 기도가 없을 것이다. 이제는 용서가 주어지지 않는다. 그리고는 욥을 시험하도록 사단에게 내어 주셨던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마지막 세대를 사단에게 시험하도록 허용해 주실 것이다.
사단에게 그들의 목숨만 건드리지 말고 마음대로 시험하도록 허용하실 것이다. 그러나 14만 4천은 승리할 것이다. 그들의 하나님을 향한 사랑과 충성 그리고 완전한 순종을 위해 경험한 모든 훈련이 그들로 하여금 사단의 고소를 영원히 침묵시킬 수 있게 만들 것이다. 그들은 차라리 죽으면 죽었지 하나님께 욕을 돌릴 수 없다는 지극한 사랑과, 예수의 마음을 가진 자들일 것이다.
필자는 이렇게 생각한다. 14만 4천은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는 날 의인들을 무덤에서 부활시키실 권한을 갖도록 해 드리는 자들이라고. 이상한 생각이라고 말할지는 모르지만 독자들은 곰곰이 생각해 보기를 바란다. 지금까지 항상 고소하는 일을 일삼아 왔던 사단이 예수께서 재림하시는 클라이맥스에서 과연 가만히 있으리라 생각하는가? 그는 이리 뛰고 저리 뛰면서, 예수님께서 무덤에서 막 부활시켜 올리시는 의인들을 보면서 다음과 같이 최후의 고소의 말들을 퍼부을 것이다. "하나님, 불공평합니다. 이것은 불법이요. 내가 이들의 과거를 너무나 잘 압니다. 이 사람은 죽기 얼마 전에 화를 내는 죄를 지었다고요. 저 사람은 변조된 성일을 지켰던 자 아닙니까? 그 사람은 안돼요. 그 사람은 부절제한 사람이 아니었습니까? 이들은 완전히 당신의 율법을 지킨 자들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사단을 향하여 이렇게 말씀하실 것이다. "참, 아직 자네는 그 고소하는 버릇을 고치지 못했구먼! 자! 사단아! 저기에 서 있는 살아 있는 성도들, l4만 4천을 보느냐! 그래, 자네가 저들을 유혹하고 시험했을 때에 과연 이길 수가 있었던가?" 그때에 사단은 입을 다물고 아무 말도 못할 것이다. 그는 저들 중 단 한 명도 하나님의 율법을 어기게 하는 일에 성공하지 못한 것을 잘 아는 터이기 때문이다.
그때에 하나님께서 계속해서 우주를 향하여 말씀하시는 소리가 하늘을 울리며 퍼져 나갈 것이다. "자, 이 14만 4천과 지금 내가 무덤에서 부활시키고 있는 이 의인들과 그들의 성품들을 대조해 보아라. 그들의 성품이 동질의 성품들이 아닌가! 만일 내가 지금 부활시키고 있는 이 의인들에게, 내가 14만 4천인들에게 주었던 온전한 진리의 빛들과 똑같은 기회를 주었더라면 그들도 이들과 같이 똑같은 성품의 장성한 분량을 소유했을 것이 아닌가! 이 마지막 세대가 바로 그 사실을 증명하는 것이 아닌가!" 이때에 온 우주는 하나님께 찬송과 영광을 돌리게 될 것이다. 이전에 들어 보지 못한 찬송이 하늘을 치솟을 것이다. "하나님의 심판이 공의롭도다! 할렐루야! 그에게 영광과 존귀를 세세토록 돌릴지어다 아멘."
드디어 사단의 고소는 침묵하게 된다. 드디어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이 온 우주에 드러나 증명되었다. 이제는 더 이상 죄와 반역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이 승리하였다!
하나님의 보좌 주위에 서서 하나님을 찬송하는 네 생물과 이십사 장로와 14만 4천인들의 간증은 다시는 우주에 죄와 반역이 일어나지 못하게 만들 것이다. 그들은 이 땅에서 어린양이 어디로 인도하시든지 따라갔던 자들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마지막 세대를 기다리고 계신다.
6) 14만 4천의 중요한 특성
14만 4천은 마지막 세대이다. 그들은 마지막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이 내릴 때에(은혜의 시기가 끝난 후에) 중보자 없이 서는 자들이다. 언제 하늘 성소에 중보자가 없게 되는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소에서 죄의 중보를 마치고 나신 후, 대속죄일의 지성소 사역이 마치고 세상에 은혜의 시기가 끝나고 난 후에는 더는 예수 그리스도의 중보가 없는 것이다. 하늘에 중보자가 없게 되면 품고 있었거나 버리지 아니한 죄악들은 더 용서받을 수 없다. 그렇다면, 왜 14만 4천명이 중보자 없이 서는 일을 감당해야 할까?
일찍이 사단은 하나님의 율법에는 결함이 있고 하나님은 불공평하신 분이라고 비난하였다. 선악 간의 대쟁투는 최초로부터 하나님의 계명에 관한 것이었다. 또한, 마귀는 하나님의 계명은 순종할 수 없고 그 계명을 폐기하지 않고서는 죄인이 용서받는 일은 불가능하다고 선언하였다. 아담과 하와의 범죄가 그것을 증명하는 것이라고 기뻐 날뛰었다. 그러나 예수께서 인간이 되시어 이 땅에 오사 우리 죄인의 육체를 입으시고 같은 시험과 유혹들을 당하시면서도 죄의 파워를 이긴 승리자가 되셨다.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를 인하여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육신을 좇지 않고 그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로마서 8:3,4).
당신의 생애와 죽음을 통해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공의는 당신의 자비를 파괴하지 아니할 뿐만 아니라 죄는 용서받을 수 있고 계명은 의로우며 완전히 순종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밝히셨다. 하늘에서 시작된 하나님의 율법을 대항하는 전쟁은 세상의 종말까지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마침내 구속의 역사의 끝에 가서, 예수님 자신이 보이신 그 온전한 순종의 모습을, 당신의 보혈의 능력으로 구속하시고 회복시키신 최후의 한 무리를 통해 재현시켜 보이셔야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드디어 온 우주는 하나님께서 구원하시기로 작정하신 자들, 죄인이었다가 회복된 그 인간들을 다시 죄 없는 하늘로 맞아들이기에 지극히 안전하다는 것을 보게 되는 것이다. 이 일은 완전한 빛과 진리의 회복, 다시 말해서 진리에 대한 인간들의 이해와 지식에 비례하여 이루어질 수 있다. 심판은 각 개인들이 자기 시대에 주어진 빛의 양에 따라 판단을 받게 된다. 과거의 여러 세대 가운데 어떤 이들은, 어떤 것들은 몰랐거나 깨닫지 못했기에 그렇게 행하지는 못했을지 몰라도 그들이 아는 한도 내에서 모든 진리를 따라 순종하는 삶을 산 사람들이 있다. 사단은 그러한 자들의 부족을 지목하면서 완전치 못한 자들을 왜 구원해 가느냐고 하나님을 고소할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마지막 세대의 14만 4천의 증인들을 통해 특별한 증거를 준비하고 계신 것이다. 모든 진리가 완전한 빛으로 회복된 세대에 사는 14만 4천인들은 자기들이 깨달은 모든 진리에 온전히 순종하는 성품을 보임으로, 과거의 구원받는 세대들도 이 14만 4천과 같은 성질의 성품을 가지고 있었음을 제시하시는 것이다. 만일 그들도 이 모든 진리와 빛을 알고 이해했더라면 그들 역시 똑같은 충성과 순종을 보였을 것이라고 변호하실 수가 있게 되는 것이다.
드디어 온 우주는 하나님의 계명을 목숨 내걸고 순종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을 반사하고 하나님의 성품과 그분의 계명을 옹호하며 사단이 틀렸다는 사실을 제시하는 살아 있는 마지막 세대, 충성스러운 성도의 무리를 보게 되는 것이다. 이 얼마나 장엄한 광경인가! 타락한 인류가 드디어 하나님의 형상으로 완전히 회복되어 하나님의 억울하심을 자기들의 변화된 생애로 변호해 드리게 되는 그 광경이!
사단이 아무리 유혹하고 위협해도 14만 4천은 그것에 굴하지 않는다. 그들의 원동력은 자신들의 구원에 대한 집념이 아니다. 오히려 너무나 좋으신 하나님의 누명을 벗겨 드려서 영원토록 아무런 의심이나 불평이 없이, 온 우주가 하나님께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드리게 하겠다는 거룩한 동기가 그들의 헌신의 원동력이 되는 것이다.
개국 이래로 그때까지 없던 환난의 때가 머지않은 장래에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다. 그 환난의 때에는 각 사람이 자기의 성품을 가지고 하나님의 앞에 서야 한다. 우리의 대제사장께서 우리에 대해 속죄하고 계시는 오늘날,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죄를 승리하고자 노력해야 한다. 우리 구주께서는 비록 생각으로라도 유혹의 힘에 굴복당하지 않으셨다. 사단은 사람의 마음 가운데 그가 발을 붙일 어떤 곳이 있는지 찾는다. 그러던 중 어떤 죄된 욕망을 품게 되면 그것을 발판으로 삼아 마귀는 유혹의 힘을 발휘한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 임금이 오겠음이라 그러나 저는 내게 관계할 것이 없으니"라고 친히 말씀하셨다(요한복음 14:30). 사단은 하나님의 아들에게 승리를 얻을 길을 전혀 발견할 수 없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아버지의 계명을 지키셨다. 그러므로 그분에게는 사단이 이용할 수 있는 죄가 전연 없었다. 환난의 때에 서게 될 사람들도 이런 경험을 가져야 할 것이다.
요한계시록을 쓴 요한은 어린양이 시온산에 서 있고 그와 함께 14만 4천이 하나님 아버지의 이름을 이마에 받고 같이 서 있는 것을 계시에서 보았다. 그들은 하늘의 인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하나님의 형상을 반사하였고 거룩한 자의 빛과 영광으로 충만하였다.
14만 4천은 온 세상 앞에 놀라운 진리를 가지고 서야 하며, 반대를 받을 때 그들 속에 꼴 지어진 영광의 소망이신 그리스도의 형상과 성품을 온 세상에 나타내야 하는 사람들이다. 그리스도인의 성품의 이상은 그리스도와 같이 되는 것이다. 인간의 육신을 가지신 그리스도의 생애가 완전하셨던 것처럼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도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일에 완전하여야 한다. 예수의 성품은 우리의 것이 될 수 있다. 이 일은 성령의 충만한 능력으로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저희는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요한계시록14:12). 이 말씀은 14만 4천의 성품을 가리키는 말씀이다.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의 믿음을 지키는 자들! 예수께서 이 땅에 사실 때 가지셨던 그 믿음, 십자가 위에서 둘째 사망까지 경험하시면서도 낙심치 않으시고 끝까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순종의 본을 보이신 바로 그 믿음! 14만 4천은 바로 그 예수의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계명을 지켜서 하늘과 땅 앞에 우리 하나님의 구원의 솜씨를 노래하며, 예수님의 머리 위에 면류관 씌워 드리는 마지막 세대인 것이다(이사야 62:1~3).
14만 4천! 얼마나 아름다운 구속의 경륜의 결정체인가! "면류관 가지고 주 앞에 드리세! (Crown Him with Many Crowns!)" 라는 찬송은 14만 4천이 부르는 노래여야 한다.
우리는 14만 4천인에 대하여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다. 그러나 우리는 적어도 그들이 한정된 숫자의 특별한 무리이며, 마지막 세대로서 우주 앞에 제시해야 할 특별한 사명을 가진 자들이라는 이해는 반드시 가지고 있어야 한다. 사단이 해 온 고소를 무력하게 만드는 증인들인 14만 4천! 우리는 그 반열 속에 들어가기를 얼마나 사모해야 하겠는가!
어린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들! 입에 거짓말이 없고 흠이 없는 무리! 이것이 바로 오늘 우리의 소원이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아직 버리지 못한 나의 죄들 때문에 여전히 하늘 성소에서 고통당하시는 어린양을 생각함으로 죄를 미워하며 버리게 되고,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과 공의로우심을 옹호하기 위한 열정이 우리로 하여금 의로운 생활을 살게 하는 원동력이 되게 하자!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부여하신 모든 능력을 다하여 14만 4천에 들어가기 위해 총력을 기울여야 하겠다.









